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
1982년 2월20일자 D일보 6면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겨 소개하겠습니다.
- 이하 기사내용 -
예수 크리스트가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아나 현재 '유럽'의 귀족들 중에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편 책이 지난주 '런던'에서 발매되자 세계적으로 화제와 파문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뉴스워크'지도 이 책의 주장과 반응을 종교페이지에 다루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 책의 제목은 '성혈과 성배', '성혈(聖血)'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흘린 피를 뜻하고 '성배(聖杯)'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기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때 사용했고 그 뒤 십자가 밑에서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컵을 말한다. 저자는 3명으로 영국의 TV 프로듀서인 '헨리 링컨' 미국 태생의 소설가 '리처드 레이' 뉴질랜드의 사진작가 '리셀 베이전트'이다. 이들은 성혈과 성배에 얽힌 믿을수 없는 이야기를 10년 동안 추적한 결과를 책으로 쓴 것인데 기독교계에 폭탄적인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하면 예수는 독신생활을 한 구세주가 아니며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아이들을 가졌고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체 함으로써 '다윗'왕을 계승하려 했으며 결국에는 그의 조국에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들 저자는 예수가 가짜 처형 끝에 살아 남았다는 전설은 2세기 경의 '그로시스'파(영적인식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설명하려 했던 이단 기독교도) 에서부터 전해왔고 그의 결혼설은 최소한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저자들은 예수의 아내와 자녀들이 고대 프랑스의 '골'지방으로가 정착했는데 그곳에서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왕국의 '메로빙'왕조 통치아래 동화된다는 것이다. 그후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채 지하로 잠적하는데 1099년 예수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이용'이 십자군들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다윗'왕을 다시 계승했다고 지적했다. 이점에 대해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됨)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란 비밀조직은 예수가의 비밀을 신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저자들은 '시온의 소수도원'이란 조직은 '유럽'과 '영국'의 많은 귀족들이 예수의 먼 친척이란 징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책의 저자가 예수가의 비밀을 캐네게된 동기는 저자중 한사람인 '링컨'이 남부 '프랑스'의 한 신부가 1890년대 이 지방의 부와 얽힌 비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매혹 당하면서부터다.
이야기란 그 신부가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의 비밀기록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내용중에 '시온의 소수도원'이 간직했던 비밀을 밝히는 고대서류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스스로를 살아있는 '시온의 소수도원'멤버가 돼버렸다고 주장할 정도로 기록등을 신봉하게 됐다고 털어놓고 있다.
아무튼 이책이 출간되자 영국에서 곧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성직자와 비평가들의 분노와 비난도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한때 예수를 동성애자가 아닌가 암시하기도 했던 성공회의 신학자 '휴 몬트피오리'주교는 이 책에 대해 '아마튜어적이고 무식하며 괴상하다'고 혹평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이 책이 나오지 않았지만 '시온의 소수도원'의 내부비밀에 대해 저자들에게 알려줬으며 자신도 예수의 후손으로 꼽히고 있는 '피에르 플랑타르'도 잔뜩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랑타르'에게 저자를 소개해준 언론인 '쇼메이오'씨도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을 부인했다.
이같은 관련자들의 부인에도 불구, 저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학자적이고 사려깊은 것이었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들이 반문하는 내용이 재미있다.
'어떤 한 사람(예수를 지칭)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 한가, 아니면 처녀의 몸속에서 태어나 물위를 걷고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 기사 끝 -
이상으로 D일보의 기사 내용은 끝을 맺고 있는데 그러나 이런 1982년의 사건 이후로 예수를 믿고 있는 수많은 목사나 신부, 수녀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와 천주교 등 모든 종교단체들이 이 저자들을 허위와 사기죄로 고발하였고, 결국 이 세기의 재판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의 관심을 받으며 3년간의 법정 투쟁을 거쳐 영국 대법원에서 그 사실여부가 결판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중에 계속해서 기사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물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예수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족보를 가지고 증인으로 나서게 되면서 재판이 심상치 않게 나가자 재판장이 3개월동안 재판을 중단하고 몸저 눕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어요.
결국 이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여러 목사님,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들 죄송합니다...'
'저의 집안은 3대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집안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을 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로 망명해서 82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하 생략).
이 판결문이 나오자 법정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일부 신부와 목사, 수녀 등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찢어 버리며 울부짖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 재판의 결과가 메스콤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영국전체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예수에게 속았다는 비통의 성토와 함께 자살하는 종교인들이 속출하고 전국이 충격에 빠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결과의 국외 전파를 금지하고 판결문에 대해서는 함구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후 영국 국민의 대다수가 다른 종교로 바꾸었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등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으며, 이런 여파로 기독교의 신자가 극감하고 교회가 술집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예수에 대한 영국대법원의 종교재판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런 기록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러 일이 알려진바 없다고 해서 사실 그자체가 은폐내지는 부정될수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이런 결과는 예수를 몰라보는 처사로서 분명 예수님을 음해하고자 하는 사단의 짓이라고 매도할지 모르겠으나, 영국에서 그것도 대법원에서 할일없어 이런짓을 한것은 아니다. 영국은 나름대로 기독교의 국가로서 명맥을 이어온 나라이지만, 재판 당사자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직,간접으로 참여한 3년간의 종교재판을 통해서 이런 결과를 내린 것입니다.
출처: http://pann.nate.com/talk/116996747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
1982년 2월20일자 D일보 6면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겨 소개하겠습니다.
- 이하 기사내용 -
예수 크리스트가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아나 현재 '유럽'의 귀족들 중에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편 책이 지난주 '런던'에서 발매되자 세계적으로 화제와 파문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뉴스워크'지도 이 책의 주장과 반응을 종교페이지에 다루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 책의 제목은 '성혈과 성배', '성혈(聖血)'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흘린 피를 뜻하고 '성배(聖杯)'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기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때 사용했고 그 뒤 십자가 밑에서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컵을 말한다. 저자는 3명으로 영국의 TV 프로듀서인 '헨리 링컨' 미국 태생의 소설가 '리처드 레이' 뉴질랜드의 사진작가 '리셀 베이전트'이다. 이들은 성혈과 성배에 얽힌 믿을수 없는 이야기를 10년 동안 추적한 결과를 책으로 쓴 것인데 기독교계에 폭탄적인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하면 예수는 독신생활을 한 구세주가 아니며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아이들을 가졌고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체 함으로써 '다윗'왕을 계승하려 했으며 결국에는 그의 조국에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들 저자는 예수가 가짜 처형 끝에 살아 남았다는 전설은 2세기 경의 '그로시스'파(영적인식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설명하려 했던 이단 기독교도) 에서부터 전해왔고 그의 결혼설은 최소한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저자들은 예수의 아내와 자녀들이 고대 프랑스의 '골'지방으로가 정착했는데 그곳에서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왕국의 '메로빙'왕조 통치아래 동화된다는 것이다. 그후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채 지하로 잠적하는데 1099년 예수의 후손으로 추측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이용'이 십자군들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다윗'왕을 다시 계승했다고 지적했다. 이점에 대해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됨)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란 비밀조직은 예수가의 비밀을 신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저자들은 '시온의 소수도원'이란 조직은 '유럽'과 '영국'의 많은 귀족들이 예수의 먼 친척이란 징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책의 저자가 예수가의 비밀을 캐네게된 동기는 저자중 한사람인 '링컨'이 남부 '프랑스'의 한 신부가 1890년대 이 지방의 부와 얽힌 비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매혹 당하면서부터다.
이야기란 그 신부가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의 비밀기록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내용중에 '시온의 소수도원'이 간직했던 비밀을 밝히는 고대서류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스스로를 살아있는 '시온의 소수도원'멤버가 돼버렸다고 주장할 정도로 기록등을 신봉하게 됐다고 털어놓고 있다.
아무튼 이책이 출간되자 영국에서 곧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성직자와 비평가들의 분노와 비난도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한때 예수를 동성애자가 아닌가 암시하기도 했던 성공회의 신학자 '휴 몬트피오리'주교는 이 책에 대해 '아마튜어적이고 무식하며 괴상하다'고 혹평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이 책이 나오지 않았지만 '시온의 소수도원'의 내부비밀에 대해 저자들에게 알려줬으며 자신도 예수의 후손으로 꼽히고 있는 '피에르 플랑타르'도 잔뜩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랑타르'에게 저자를 소개해준 언론인 '쇼메이오'씨도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을 부인했다.
이같은 관련자들의 부인에도 불구, 저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학자적이고 사려깊은 것이었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들이 반문하는 내용이 재미있다.
'어떤 한 사람(예수를 지칭)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 한가, 아니면 처녀의 몸속에서 태어나 물위를 걷고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 기사 끝 -
이상으로 D일보의 기사 내용은 끝을 맺고 있는데 그러나 이런 1982년의 사건 이후로 예수를 믿고 있는 수많은 목사나 신부, 수녀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와 천주교 등 모든 종교단체들이 이 저자들을 허위와 사기죄로 고발하였고, 결국 이 세기의 재판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의 관심을 받으며 3년간의 법정 투쟁을 거쳐 영국 대법원에서 그 사실여부가 결판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중에 계속해서 기사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물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예수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족보를 가지고 증인으로 나서게 되면서 재판이 심상치 않게 나가자 재판장이 3개월동안 재판을 중단하고 몸저 눕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어요.
결국 이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여러 목사님, 신부님, 그리고 수녀님들 죄송합니다...'
'저의 집안은 3대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집안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을 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로 망명해서 82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하 생략).
이 판결문이 나오자 법정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일부 신부와 목사, 수녀 등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찢어 버리며 울부짖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 재판의 결과가 메스콤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영국전체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예수에게 속았다는 비통의 성토와 함께 자살하는 종교인들이 속출하고 전국이 충격에 빠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결과의 국외 전파를 금지하고 판결문에 대해서는 함구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후 영국 국민의 대다수가 다른 종교로 바꾸었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등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으며, 이런 여파로 기독교의 신자가 극감하고 교회가 술집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예수에 대한 영국대법원의 종교재판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런 기록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러 일이 알려진바 없다고 해서 사실 그자체가 은폐내지는 부정될수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이런 결과는 예수를 몰라보는 처사로서 분명 예수님을 음해하고자 하는 사단의 짓이라고 매도할지 모르겠으나, 영국에서 그것도 대법원에서 할일없어 이런짓을 한것은 아니다. 영국은 나름대로 기독교의 국가로서 명맥을 이어온 나라이지만, 재판 당사자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직,간접으로 참여한 3년간의 종교재판을 통해서 이런 결과를 내린 것입니다.
출처: http://pann.nate.com/talk/116996747
진실? 혹은 거짓?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