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고의 ‘여름 고시엔’ 우승이 어제, 오늘 화제의 중심인데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나처럼 교토국제고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페친이 많으리라 추측한다. 교토국제고의 정식 명칭은 교토국제중학고등학교다.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 있는데 전교생 159명의 작은 학교다.
중학교 재학생은 22명(남학생 4명, 여학생 18명), 고등학교 재학생은 137명(남학생 68명, 여학생 69명)이다.
남고생 68명 중 7명을 제외한 61명이 야구부 소속이다. 7명도 원래 야구부원이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남고생 전체가 야구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야구 특목고’로 간주할 만하다.
교토국제고의 전신은 재일 동포들이 1947년에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은 이념에 따라 남한을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약칭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약칭 ‘조총련')으로 양분된다.
민족교육을 위해 두 단체는 각자 별도의 교육 기관을 세운다. 북한은 조총련 소속 학교들을 지원하는데 초기부터 적극적이었다.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총련 소속 교육기관을 ‘조선학교'라 부른다. 일본 전역에 64개가 있다.(2018년 기준)
민단이 세운 교육 기관은 그보다 훨씬 적다. 한국의 교육 과정을 따르지만 한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다. 민단 산하에 4개의 학교 법인을 두고 학교를 운영한다. 도쿄에 1개, 오사카에 2개, 교토에 1개가 있다. 이번에 고시엔에서 우승한 교토국제고는 바로 교토에 있는 민단 소속 학교다.
민족교육 기관이 조총련 64개 vs. 민단 4개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검색해보니 조총련 회원은 약 8만 명, 민단 회원은 약 60만 명이다. 8만 명 회원의 조총련은 민족학교를 64개 운영하는 반면, 60만 회원의 민단은 4개를 운영한다는 말이 된다. 전자가 그만큼 더 민족교육에 진심이라고 볼 근거가 되겠다.
재일 동포가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굳이 민족학교로 진학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이는 학생수의 감소로 이어졌다.
교토조선중학교 또한 폐교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지원하는 학생이 부족했다. 돌파구는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정규 학교(일조교 一条校)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수령하고, 재일 동포들뿐만 아니라 일반 일본인들로부터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2003년에 일조교 인가를 받았고, 다음 해인 2004년에 교토국제중고등학교로 새롭게 개교한다.
일조교가 되면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공식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민족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인데 한국어, 한국지리, 한국사 등의 ‘민족교과’를 중학교 과정에서는 정규 과목의 일부로,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것 같다. (교토국제고의 교과목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개교 당시 발표 내용을 토대로 추정)
교토국제고는 교명대로 외국어 특성화고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며 그중 한국어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류와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일본 학생, 특히 여학생을 유인하는 요인일 것이다.
한편 남학생을 끌어당길 요소로는 야구부만 한 것이 없다. 조총련계 민족학교 대부분이 축구부, 럭비부, 농구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창단하자마자 교토 지역 대회에 참가했는데 전통의 야구 명문 교토세이쇼고와 붙어서 5회 만에 0-34로 대패했다. 당시 세이쇼고 2루수였던 고마키 노리쓰구는 훗날 교토국제고의 감독이 된다.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은행원이 된 고마키에게 교토국제고의 수석 코치인 지인이 주말만이라도 야구부원들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 2006년부터 주말 코치를 하다가 2007년에는 아예 은행을 사직하고 전임 코치를 하게 된다. 당시 겨우 24살이었고, 올해로 17년째 교토국제고 감독을 맡고 있다.
교토국제고가 교토조선중학교의 정신을 잇기 위해 한국어 교가를 유지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2021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4강에 올랐는데 그때 일본 우익 단체들이 한국어 교가를 문제 삼아 여러 차례 위협을 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어 교가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교토국제고가 진정한 의미의 ‘민족학교’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교토국제고는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한 민족학교다. 그런 유연함이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에는 비타협적인 조총련계 민족학교들의 매우 고단하고 외로운 현실이 있다. 그걸 조명하는 다큐가 꾸준히 제작되는 것은 그만큼 힘든 현실을 버티고 있다는 방증이다. 2006년에 김명준 감독의 다큐 ‘우리 학교’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023년에는 일본의 조선학교 지원금 배제와 그에 맞선 손해배상 소송을 다룬 다큐 ‘차별’이 개봉되었다. 조선학교의 현실에는 별 변화가 없는 것이다.
절대 교토국제고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계기로 재일 동포들의 민족교육 노력이 재조명되는 만큼 다른 민족학교에도 관심을 갖자는 의미다.
이번 고시엔 결승전에는 '동서수도대결'과 '우리 지역 대표'라는 서사가 있다고 일본통인 테츠 사마가 짚어주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댓글에 링크)
누가 그러던데 이번 고시엔 결승전은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에 열린 대회에서 현 수도인 도쿄와 구 수도인 교토의 대표”가 맞붙은 빅 스포츠 이벤트였다. 도쿄와 교토를 대표하는 고교 야구팀이 고시엔 결승에서 맞짱을 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감 잡았다.
학교가 너무 작아서 취주악단이 없는 교토국제고를 위해 교토산업대부속고 취주악단이 응원에 참여한 것(첨부 사진), 교토 지역 예선에서 패한 교토세이쇼고(京都成章高) 야구부원들이 빨간색 머리띠에 메가폰을 잡고 응원을 주도한 것, 교토국제고 응원석을 교토 지역 주민과 학생 1,200여 명이 꽉 채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교토 주민들에게 이번 고시엔 결승전은 재수 없는 도쿄를 ‘개 처바른’ 경기였던 것이다. 일본 사회가 열광했던 것은 과거의 수도와 현재의 수도의 대결 구도가 그 어느 경기보다 흥미진진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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