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하게 자랐다. 생각들은 많은데 정리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글을 남기면 조금이나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외동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았다.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단 하나도 부족한 거 없이 지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뭐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장난감을 얻었지만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장난감을 바라보며 "아 저것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지만 참았다. 비교적 최근에는 생각보다 쉽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얻어낸 도쿄 한 달 살기였지만, 난카이 대지진이 겁이 나서 일주일도 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또 제주 국제학교에서 성적과 친구관계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곳을 졸업하면 나중에 나한테 다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억지로 이를 갈며 버텼다. (실제로 이를 갈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뉴욕에 한 학기 동안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 추수감사절을 보내기 위해 리치먼드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지만 그곳에서는 난생처음 본 미국인 사촌동생에게 시달렸다. 내가 봐도 "시달렸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내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군가가 그 선을 넘으려고 한다면 나는 필사적으로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 이것들을 제외하고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이 참고 인내하며 버텼다. 최근에는 깊은 고민 끝에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뉴욕에 유학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독단적으로 일본의 한 대학교에 지원 원서를 제출했다. 내가 망설임 없이 혼자서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지원했던 학교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이 없는 날들을 골라서 거의 인생 처음으로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지원서를 제출하고 대략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결과 발표 이메일이 도착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터치패드를 클릭했다. 결과는 합격 상당히 기뻤다. 뉴욕의 대학은 컨설턴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지원했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내 힘으로 얻어낸 결과였기 때문일까. 그 찰나의 순간이 2025년 중에서 가장 기뻤다. 마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은 학비 혹은 개인 사정으로 가지 못한다는 제주도 국제학교에서 가장 밑바닥을 기어 온 나로서는 이 대학의 명성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 대학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나조차도 나에게 아직 상당량의 의심이 남아있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최근에 이 꿈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니 불가능하지만 결국 명백한 내 잘못이다. 잘못했다는 한 마디 아니 몇 마디여도 완화되지 않을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내 머릿속에는 도대체 어떤 놈이 있길래 이 모양일까 오늘 처음으로 궁금증이 생겼다. 그냥 힘든 게 싫은게 아닐까. 지금 당장은 생각을 정리하기 어렵지만 미래가 무섭고 걱정되고 떨린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는 점점 늘어가고 미래는 아무 생각 없이 불안하기만 하고 현재는 과거와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이 말도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쓰는 글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모르겠다. 머리가 멍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가 없다. 하기 싫은 건지, 정말 할 수가 없는 건지 조차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화가 나고 더 힘들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려나. 차라리 뇌를 빼고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자유를 점점 잃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조금씩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겠지만 나는 그 반대다. 초반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얻어버렸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흥미도 점점 잃어간다. 둔해진다. 시간이 해결해 줄까. 복에 겨운 놈이지. 복과 운이 차고 넘치는 놈. 화분에서 자란 연약한 화초. 그런 화초가 잡초 밭을 뒹군다는 건 고문. 물론 적응은 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적응까지의 레이스를 화초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나는 "포기한다"에 한 표를 던지겠다. 고생을 안 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지금 이 글도 잘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누군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평생을 좋아하는 일만 했던 인간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손에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한평생 하기 싫은 일을 했던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아예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이야기다. 어느 부분을 수리해야 할까. 나는 딱히 고장 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누군가에 품은 따뜻하구나. 근데 오늘 내가 그 품을 찢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겠지. 막막하다거나 걱정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그냥 무섭다.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그렇지만 강제로 힘을 넣으라고 한다면 억지로 넣어야겠지. 춥지 않은데도 춥다. 뼛 속의 깊은 곳이 떨린다. 노래를 듣지 않으면 다른 생활 소음들의 음량이 순식간에 커진다. 얼굴이 찌푸려지고 몸이 먼저 반응해서 막기가 힘들다. 앞으로의 미래는 두 가지. 불구덩이 속에서의 지옥 혹은 불구덩이 바로 위에 다리에서의 지옥. 굳이 고르자면 후자가 더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별반 차이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 수 없는 욕구가 차오른다. 어쩌면 내 몸은 이미 절여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쯤 본질을 깨닫게 될까. 이 세상의.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예고 없이 다가오면 그때는 부디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개선되어 있기를. 그때가 되면 그때의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감사하며 미래를 긍정으로 기다리는 내가 되어 있기를.